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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에 해당하는 글들

  1. 2006/02/17  L선생님의 추억 (4)

L선생님의 추억

최근 L선생님의 출판이 나왔다. 비록 단독 저자나 소수의 공동 저자로 이루어진 책이거나 독창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쓸만한 경시대회 교재이다. 지금까지 KMO, 서울시, 경기도 경시대회의 문제와 그 해설을 모은 교재이다.

말할 필요도 없이 L선생님은 나의 은사님이시다. 중학교 무렵 수학 경시대회로 과학고에 진학하겠다는 말도 안되는 꿈을 가지고 있을 때였다. 그때 나는 당시 잘하는 것이라고는 학교 수학 시험에서 나름대로 좋은 점수를 받는 것 외에는 없었다. 그러다가 중학교 2학년 무렵, K군의 소개에 이어 종합반 학원을 다니게 되었고, 2학년 말 즈음에는 K군과 L선생님이 개설하는 수학경시 준비반에 들어가게 되었다.

뭐랄까, 처음 갔을 때의 분위기가 정말 압도적이었다. 도저히 선생님이라고는 어울릴 리 없는 왜소한 몸매에, 힘없는 목소리로 뒤에 들리지도 않게 설명하는 이야기들. 하지만 이야기 하나하나에는 논리가 깃들어 있었고, '아이디어'의 중요성이 새겨져 있었다. 또, 그 왜소한 몸매로부터 나오는 체벌 파워는 정말 불가사의였다. 물론 나는 그 선생에게 완전히 매료되어 첫 내부 시험에서 2등이라는 좋은 결과를 얻었다. 평소 라이벌 관계였던 K군은 이내 곧 경시반을 그만두게 되어 아쉬웠지만.

그 이후로 '외부 영입 강사'로서 그의 장악력은 정말 대단했다. 지독한 스파르타식 수업 진행으로 '단지 흥미만으로' 경시반에 들어온 녀석들을 하나하나 솎아내고, 마침내 20명 가량이 남게 되었다. 이 20명은 이제 남은 8개월 후의 서울시 경시대회까지 오후 4시부터 자정까지 아이디어와 함께 동고동락하는 동지가 되었다. 물론 저녁에 다같이 컵라면을 먹고 오락실에 15분간 뛰어갔다오는 그런 우정도 과시했지만 말이다.

그는 정말 뛰어난 '교육계의 학자'였다. 보통 학원과 계약을 맺어 출강하는 프리랜서 선생들은 대개 자신의 집을 사무실과 교육연구공간으로 활용하며 자신의 완벽함만을 보이기 위해 노력하게 마련이다.(나는 어떤 철없는 그러한 선생 밑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 그러나 그는 앉는 자리가 곧 그의 연구 공간이었다. 항상 들고다니는 것은 세가지 뿐이었다. '아이디어 훈련용'의 몽둥이, 해외 수학 원서, 그리고 가끔 원서가 중국어일때 번역을 위한 중한사전.

그렇지만 다른 곳에서 성공했던 그도 '정치'에는 약했나 보다. 나름대로 부유한 한 친구가 학원과의 로비를 거쳐 '실력도 없는데' 우리 경시반엘 들어왔다. 대략 3개월 정도 남겨두고 들어온 듯 하던데, 그가 들어오자 우리의 차분한 분위기는 깨지기 시작했다. 준비 후반부에 다그칠 수는 없는 노릇이라, 그는 '야생마'였다. 기존의 모든 이들을 휘젓고 다니기 시작했다. 결국 그와 동조하는 파와 아닌 파로 갈렸다. 당연히 전자는 out of control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 나는 재능과 실력의 부족으로 입상도 못했지만, 그때의 공부를 기초삼아 고등학교와 대학 학부 때에는 수학에 관한 한 아무 걱정없이 임할 수 있었다. 물론 대학에 오니 쟁쟁한 사람들이 너무도 많아 나 자신이 움츠러들 때도 많았지만, 적어도 어떤 수학적 아이디어에 대해 흥미를 가지게 된 것은 정말 다행이다.

그가 가끔 몽둥이를 땅에 짚으며 이야기하던 '아이디어가 중요하다' 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경시 문제는 대개 '어디서 본 적도 없는 문제'가 나오게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에 임하는 순간 아이디어를 떠올려야 한다. 사람마다 다를지 모르나, 이렇게이렇게 증명하고 이런이런 원리를 써야겠다고 차분히 정리한 다음 자신의 증명을 완성시켜 나간다. 물론 요즘 개최되는 사설 학원이나 방송사, 신문사 등의 경시대회는 어디선가 나온 문제가 또 나오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그래서 도닦는 기분으로 '아이디어'를 찾는 것은 정말 딴나라 얘기 같긴 하다.

아무튼 이번에 나온 책이 그가 늘 이야기하던 '아이디어'가 적용된, 새로운 아이디어의 산물은 아니지만, 어쩄거나 그의 '아이디어 지상주의'을 알리는 첫 발자국이 되었음에 축하릅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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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2/17 06:00 diary/omo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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